240109 사이비

사이비 울새찬가

그저 평범했을 남자×성녀의 이름을 가진 여자


바야흐로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란 말 새기고 살아온 어느 도련 여느 날처럼 믿지도 않는 신께 기도하러 교회 들르려니 일전 저번 주까지만 하여 건재했던 교회 있던 자리 공허만 남아서는
그래도 이십구 년간 주일 빠지지 않았으니 새로운 터전 향해 나서겠지 기이하게도 집에서도 직장서도
그리 멀잖은 곳에 아주 오래 된 교회가 있다는 소식 그런데 왜 이리 규모가 작은 거지? 선전 홍보 일절 않고 그저 평범한 건물에 십자가도 박아넣지 않고 이름만 하나 써넣었다는데 그 이름이 거룩하신 사람들
따지고 보면 그 때 신고했어야 했다고 생각해도 이미 지금은 늦은 밤

계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주일임에도 고요한 홀이라 정처없이 돌아다닐 수도 없고 그저 가만 서있기만 할 뿐인데 마침 어디선가 문을 열고 나오는 한 여자
누구셔요?
여기 다니려고 하는데⋯⋯
말소리 들으면 여자 표정 잠시 색 없어졌다 발 빠르게 고개 끄덕인다 이쪽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어요

운이 좋네요, 마침 지금 기도 드리고 있었거든요

기도 드린다 하여 갔더니만 경전도 외우지 않고 면사포와 십자가는 어디로 갔는지 삼삼오오 모여 조잘거리는 이들
시인 당황하여 뒷걸음칠라 싶음 말소리 들려오겠지 있지 그분이 추구하는 선은 무엇이셨을까 하면서 이 구절 저 구절을 해석하니
평생을 활자 입맞추며 살아온 남자 그 자리 붙박여서
저희는 조금 특이하게 기도 드려요 그분의 말씀 다시 생각하고 사유하는 것이 하여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오래 믿음 건재한다 생각해요 하며 옆에서 여자가 말하자면 시인 잠시 그런가 싶겠지 하기사 방안에서 시만 쓰며 살아온 도련 무엇 알렸다? 오늘은 첫날이니 저와 대화해요 하는 소리에 홀려서
그렇게 이른 아침 찾아갔더니만 나갈 때는 밤인 게 문제 야무지게도 종종 나누어 준 간식거리 줏어먹어서 복부는 더부룩하지 입은 말랐지 그런데 이상하게 머리는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게 돼 예를 들면 그 여자의 신앙이라던가 그분의 말씀이라던가 하는 것들
그러니 남자가 주일 아닌 월요일에 그곳 간 것은 전무했던 일
오늘은 고요하리만치 사람이 없는지라 여자와 또다시 이야기하자면 어째서인지 맨발이 보이는 것 신을 신지 않으세요? 그래야 신께 더 가까이 다가가지요 이 무슨 언어유희라고⋯⋯ 허나 여자는 그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여서
하루 이틀이 일주 되고 이주가 넉달 되고 그러한 나날들 중 언젠가 여자가 이렇게 읊었지 그분 실재하실까요? 시인은 믿기 나름이라 답했지 여자는 믿음에 힘이 있다고 믿지만 그분 존재엔 영 부정적이었던지라
시인 그제서야 여자를 다시 되돌아보는데 그 이유 이 여자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왜냐니 여자는 신부잖아

신의 신부 되시는데 그런 말씀 하셔도 되나요 라는 말 자리 파할 때 즈음 고요히 속살이면 여자 깔깔 웃겠지 그런 걸로 화내심은 쪼잔한 거죠
어쩐지 그 말 한마디에 여자가 그저 무감한 타인 아닌 바운더리 내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해서
남은 반년은 여자를 알아가는 시간
일 년째 되는 날 그러니 감격스럽게도 이곳 정식 일원 되는 날
사랑하는 연인의 기도 하에 세례명 얻으니 겨울이라 하렷다 연인이 하는 말이 있지 나를 사랑해?
남자의 대답은 뭐 그런 걸 물어보냐는 당연스런 말
그러면 여자는 깔깔 웃고서 껴안는 일
여자가 이곳 거주한다는 건 그날 알게 됐어

여기 살아요 응 식사는요 간식으루 먹어 제대로 챙겨 먹어요 그런 말 하며 침대에 나란히 누워 창 밖 별들이나 보자면 여자가 깔깔거리며 대뜸 웃는 일 도련은 참 순진해! 어째서냐고 물으려 들었지만 그날따라 입이 안 떨어지는 게
여자는 울 듯한 표정이었잖아
집에 들어가지 않은지 며칠째 나 퇴사할까 하는 말에 여자는 화내지도 긍정하지도 않고 그저 부드러이 머리칼을 쓰다듬어서 자연스레 퇴사 처리도 완료 집구석보다 여자의 방에 물건이 많아진 어느 날 결국 계약 만료되는 날 재계약 않고 여자의 품으로 돌아간 날
새벽녘에 깨었더니 우는 여자가 있다
왜 울어요
울지 마세요
악몽이라도 꿨나요
울지 마세요
그런 말들을 하고 있자면 훌쩍이는 목소리가 어느덧 키득거리는 목소리로 변화해서
바보
사랑해
그 말의 참뜻을 알게 된 건 이틀 뒤 경전 작업에서였지
구판이 너무 오래되어 새로운 말을 써야 해 함서 출판 작업에 도련 이끌면 경전을 새로 쓰는 건 사이비라는 생각은 이미 이년 전에 사라진지 오래지 말 하나하나 토론하고 논의하고 사유하다 보면
근데 여기 신은 누구지?
믿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근본의 의문

뭐 그런 걸 물어? 당연히 없는데

그리 말하고서 깔깔 웃는 여자 평소같은 무신론이었다마는 어쩐지 따라 웃을 수가 없었지 하긴 그분 그분 했더랬지 좀 다른 종교같은 기록 없었던 것도 같고 다들 좀 자유로웠고 규칙도 느슨하고 여기 건물에 교회라고 써져있지도 않고 교회라고 한 것도 어느 블로그고
아

스녜 여기 혹시 사이비야?

라는 생각 들긴 했는데 곧이어 뭐 이런 종교 있을 수도 있지라는 등잔 밑 더럽게 어두운 생각으로 그러려니 하기 시작
바보
사랑해
여자가 또다시 그렇게 말하면 남자는 나도 사랑해 하는 어느 날의 저녁
그러니 신부가 사제라는 의미 아니고 결혼하는 여인이라는 뜻임을 알게 된 건 또다시 몇개월 뒤 결혼식 어째 텀이 좀 짧아졌다 여기 입성한지 이 년 같이 산지 일 년 결혼은 반 년이잖아 뭔가 이상한데 또렷하게 말할 수는 없는 기시감
여보 뭐 해?
그런 게 다 뭐가 중요해 부인이 부르는데
그렇게 오랜만에 동네 바깥으로 나가니 와 세상 많이 달라졌다 여자는 이상하게 한 번도 나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세상 익숙해 보이더라고 여기서 우회전 저기서 교차로 응 응 다 꿰고 있잖아 여보 사실 사람 아니지? 하는 농담에 여자가 씩 웃기만 했던 건 의심하지 않아서
여하튼 혼인 증명도 떼었겠다 이제 무를 수 없어 이혼 뿐이니 여느 때처럼 나의 신 기거하시는 건물 들어가는 둘
여보 만약 여기 사이비면 어쩔래?
무슨 소리야?
만약에 말야?
이제 와서 늦지 않았을까?
역시 그렇지?
진심이냐고 물어볼 것도 없었지만 눌어붙은 불안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근데⋯⋯ 정말로⋯⋯ 이제 와서 뭐 할 수는 있나?
난 집도 없고 가족도 친구도 없어졌는데?

그러나 둘이 행복하다면 된 이야기
자신의 삶 반경을 줄이고 쳐내고 잘라내어 좁은 시야로 살자
여자의 정체는 비밀 신일 지도 사람일 지도 
남자는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고
그렇게 둘은 오래토록 잘 살았답니다